석탑 해체 시기는 4월쯤이 될 것이라고 했기 때문에 두번째 일본방문을 3월부터 서둘러 계획했다. 직접 석탑해체 모습을 확인하고 싶었고, 해체과정 중에 석탑반환의 실마리를 잡고 싶은 생각에 서둘러 오쿠라 재단과 연락을 시도했지만, 오쿠라측에서 바쁘다며 연락을 지연하더니, 결국은 석탑해체 1주일이 지난, 4월 17일에서야 면담 약속이 잡혀졌다.
올해 두 번째인 방일협상을 앞두고 실무위원들이 모여 의견을 나누었다. 지금까지 지속적인 방일협상을 위해 온건한 자세로 협상을 했지만, 이제는 법적 소송을 제기하거나, 오쿠라재단에 사회적 흠집을 내는 등의 강경한 대응이 필요하지 않겠냐는 의견이 주류를 이루었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일본행 비행길에 올랐다.
일본의 벚꽃은 이미 만개가 끝나고, 여기저기 철쭉꽃과 어울려 신록이 물들고 있었지만, 내 눈엔 들어오지 않았다. 늦은 저녁을 먹고, 숙소에 들어갔다. 여러 가지 생각에 마음이 복잡하다.
다음날 미리 약속된 kbs 일본특파원 박재우 기자와 만남을 가졌다. 박재우 기자를 통해 지난 4월 14일 이천오층석탑의 해체에 대해서 kbs 9시 뉴스에 소개된 적이 있었다. 기자는 오늘도 방일협상 내용을 몇 시간 뒤인 저녁 9시뉴스에 보도하기로 했다.
박재우 기자와 점심을 함께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기자는 오랫동안 약탈문화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던 터라 전반적인 이천오층석탑의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또한 석탑반환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았다. 올해 석탑이 이천을 떠난지, 100년이 되었고, 한일협정 50년이라는 시대적 기회를 기자의 본능으로 놓치지 않고 보도하려는 마음이 역력했다.
카메라 기자까지 동승해 오쿠라 호텔에 약속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다. 오쿠라재단에서 오쿠라슈코칸(오쿠라재단 시립미술관, 석탑이 있었던 곳) 출입과 보도촬영을 거부하기 때문에, 기자는 호텔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우리가 협상중 오쿠라슈코칸 안내를 받을 때, 부지불식간 촬영을 감행할 계획을 세웠다.
석탑이 있던 곳에는 철문과 바리케이트가 세워져 있었다. 철문 사이로 덩그러니 남아있는 터를 보니, 가슴이 메였다. 철문 앞에서 인터뷰를 하고, 시간에 맞추어 호텔로비에 들어갔다. 오쿠라 재단 부관장은 친구를 만나듯 반갑게 맞아주었다. 방일협상이 벌써 5년을 맞았으니, 그 사이 알게 모르게 많은 추억이 있었던 셈이다. 한동안 병환으로 입원하느라, 협상에 참석지 못한 오쿠라 재단 오자키 이사장도 만날 수 있었다. 90세의 연로한 나이에 당신 스스로 운전하고 왔다고 하니, 놀라울 뿐이다.
우리측의 예상과 다르게, 면담이 다 끝난 뒤에 오쿠라 슈코칸 안, 석탑이 해체된 곳으로 안내하겠다는 것이다. 전혀 이곳 상황을 모르고, 계속 기다리고 있을 기자를 생각하면, 마음이 급해지지만, 자연스러운 듯 협상을 시작했다.
석탑은 화재나 지진이 나도 끄떡없는 안전한 곳에 보관했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우리를 안심시키는데, 고양이가 쥐 생각하는 말 같아 얄밉다. 오자키 이사장은 손가락으로 4를 표시하며 지금이 기회라고 몇 번을 강조했다. 4년 안에 해결을 보자는 것이다. 하지만, 한일 관계 개선 문제나, 아무런 댓가 없이 반환하지 않겠다는 생각은 여전했다. 우리 환수측의 추측과는 다르게, 오쿠라슈코칸이 재건축되는 4년후, 석탑 거처에 대한 계획이 없었다.
이천오층석탑이 1000년의 역사적 가치와 물질적 가치에 앞서, 이천 선조들의 신앙적, 정신적 가치가 있다는 것을 그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일본의 대 재벌인 오쿠라 재단은 눈앞의 물질적 가치만이 아닌, 석탑의 정신적 가치와 석탑을 돌려줌으로 얻게 될 미래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 줄 것을 재차 강조했다.
면담을 마친 후, 오쿠라슈코칸 안으로 이동하는 중 어디선가 불쑥 튀어나온 카메라를 보고 오쿠라측 부관장은 짐짓 놀란 듯 , 우리측에게 계속 무슨일이냐고 물어왔다. 우리는 모른다고 시치미를 뗐다.
안으로 들어가 석탑이 있는 뒤뜰에 가보니, 철문사이로 보았던 것보다 직접 보니 정신적 충격이 더 컸다. 석탑이 있어야 할 곳이 휑하니 비어있어, 나도 모르게 가슴에서 뭔가 올라온 듯 하더니, 결국 눈물을 짓고 말았다. 얼마나 기구한 운명인가. 이천에서 경복궁으로, 또 일본으로, 또 다시 해체되어 수장고에 들어가 있다니,1000여년을 버틴 석탑인데, 타향살이를 100년 동안 4번의 해체를 겪고도, 그것도 부족해 여러곳에 생채기를 내고, 그대로 내버려진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협상은 4년 내에 반환을 하겠지만, 그에 따른 명분을 숙제로 남겨두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마음이 착찹하다.
그날 9시뉴스에 착찹한 내 심정이 고스란히 방영되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많은 생각이 스쳤다.
나는 주위로부터 ‘이천 오층석탑을 왜 환수해야하는가?’ 하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이천오층석탑은 우리 조상들이 1000여년 전에 바위덩어리에 민족 혼이라는 생명력을 불어넣어 한조각 한조각 쪼아내어 만든 중요문화재이며, 백성들에게는 신앙적 상징의 문화재이다. 그러나 나라가 힘이 없어 백성들은 나라를 빼앗기고, 수많은 문화재를 강탈당했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그러한 선조들의 가슴아픈 눈물을 씻어주어야 할 책임을 가져야 하고, 또한 이천에 사는 후손들에게는 이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반드시 환수해야 된다고 말하고 싶다.
문화재의 가치는 자기자리를 찾을 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 문화재를 찾는데는 항상 위기와 어려움에 봉착되었다. 더욱이, 국가적 차원의 많은 유물들 중에서 유일하게 이천시민의 이름을 걸고, 이천오층석탑 환수를 하니, 이천시민으로서 자랑스럽기도 하고,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책임을 느낀다.
앞으로 4년 ...오랫동안 환수를 위해 노력했던 것들이 허사가 되지 않도록, 다시 마음을 가다듬는다. 지속적 환수운동을 위해 여러 가지 방법들을 강구하고 있다. 한편으론, 불법적인 경로로 일본으로 들어간 많은 우리 문화재에 대해 가슴 아파하기에 앞서, 현재 있는 우리 문화재를 사랑하고 지켜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천오층석탑이 이천에 왔을 때, 이천시민이 우리 문화재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도 준비되어야 할 것이다.
이천오층석탑이 언제 돌아올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이천시민으로서 석탑에 대한 관심을 계속 가지고 있고, 응원해 주기를 진심으로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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