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화를 중심으로 설치, 영상, 사운드, 퍼포먼스, 미술교육 등 다양한 매체들 간의 융합을 통해 아트워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신량섭 작가의 예술에는 경계가 없다. 하나의 풍경을 통해 작가 나아가 관람객 스스로 경계를 허물며 그 너머를 바라보게 한다.
판화를 중심으로 한 종합 예술
과학기술의 발전은 판화의 새로운 기법을 발달시켰고 디지털이라는 컴퓨터와의 융합은 예술의 영역을 확장하고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제는 판화적 요소를 가진 영상과 페인팅 위에 함께 입혀진 판화, 디지털 프린팅과 융합된 판화의 다양한 표현 방식들이 확장적 도구로서의 역할을 하며 새롭게 미술 세계를 바라보게 한다. 신량섭 작가 역시 판화를 중심으로 설치, 영상, 사운드, 퍼포먼스 등의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예술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추계예술대학교에서 판화를 전공한 후 판화공방에서 20여 년간 마스트 프린터로 활동한 그는 다수의 국내외 미술작가 작품을 판화로 제작하였다. 그러면서도 틈틈이 개인 활동을 이어온 그는 2010년 ‘소리풍 경지도 프로젝트’를 기획해 진행하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장르는 설치 및 사운드 등 복합 미디어 작품이었다. 이처럼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자신을 판화작가라고 규정짓지 않는다.
“예술가라는 것이 특정한 장르를 정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하나의 영감이 떠올랐을 때 그림, 음악, 공연 어떤 장르로 표현하는지의 차이지 그 영감은 하나거든요. 미술을 할지, 공연을 할지, 강연을 할지에 따라 필요 요소를 투입하고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거예요. 삶의 경로가 다양하듯이 ‘나는 어떤 작가다’라고 규정짓기보다 삶을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가 아티스트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판화와 디지털의 융합을 통해 활동하고 있는 신량섭 작가는 그럼에도 모든 근본에는 판화가 있다고 말한다. 사실 판화는 작가에게 예술적 창의성과 기술적 숙련도를 동시에 요구한다. 이 때문에 신량섭 작가는 량그라픽스 작업실에서 자신의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표현하고 확장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다양한 판화의 기법을 연구하고 발전시키고 있다.
불완전한 경계, 그 너머의 세계 신량섭 작가의 가장 대표적인 활동은 ‘소리풍경지도 프로젝트’이다. 신량섭 작가의 ‘소리풍경지도’는 2010년 무작위로 떠난 도보여행에서 비롯되었다. 작가는 파주 헤이리에서 의정부, 구리를 거쳐 가평까지 4박 5일 동안 무작정 걸었다. 이웃집 진돗개 한 마리와 떠난 이 도보여행은 자연과 도시의 경계를 넘나들며 교차되는 풍경 속을 걷는 것이었다.
“저에게 걷는다는 의미는 몸의 감각들을 일깨우는 것이며, 그 감각들이 만들어내는 세계와 가까워지는 것이었어요. 도보여행에서 또 다른 세계를 접하게 되었고 그것은 늘 우위에 존재하던 시각의 감각이 청각의 감각으로 전이되는 순간이었죠. 청각에 대한 새로운 경험은 시각으
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계기가 되었어요. 그렇게 풍경을 소리로 담아내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죠.”
그렇게 해서 진행한 소리풍경지도 프로젝트 시리즈 중 다섯 번째는 ‘불완전한 경계’라는 주제로 이천아트홀에서 진행되었다. 코로나19를 겪으며 많은 사람들이 정체성의 혼란과 관계에서 오는 불안감이 생겼다. 이 모든 것은 불완전한 세계로 연결되었다. 신량섭 작가는 그러한 불완전한 경계를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였다. 완벽하지 않은 형식과 구조, 인위적으로 조작된 시공간은 관람객 개개인이 갖는 심상의 풍경으로 가기 위한 매개체 역할을 하였다.
파주 헤이리마을, 문래동 창작촌에서 활동하다 3년 전 이천 예스파크에서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신량섭 작가는 애드벌룬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다시한번 예술세계를 확장하였다. 애드벌룬 60개에 긍정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설치작업을 진행한 것이다.
“판화 작업의 연장선상으로 애드벌룬에 적힌 ‘힘내’, ‘당신 참 애썼다’,
‘꽃보다 아름다운 당신에게’와 같은 텍스트를 통해 시민들에게 치유와 상생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어요. 예스파크가 편안하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인 데다 많은 사람들이 작품을 손으로 만져보고 느끼며 치유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의미 있는 활동이었죠.”
틀에 갇힌 사고를 깨는 예술교육 ‘지도그리기’라는 작업은 신량섭 작가에게 빼놓을 수 없는 지속적인 하나의 모티프로 자리하고 있다. 그는 2011년부터 ‘이미지지도’ 프로젝트를 서울의 인사동, 북촌, 강원도 고성, 파주출판도시 등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해왔다. 이러한 시도들은 정보 전달을 위한 지도가 아니라 각각의 장소가 갖는 이미지와 감각들을 새로운 형태로 재구성하면서 새로운 공간의 경험을 선사하는 작업이었다. 거리나 장소를 기존과는 차별화된 감각으로 조망하기를 제안하는 ‘새로운 지도그리기’는 이천 예스파크로 오면서 교육프로그램에도 접목하게 되었다. 그는 이천의 초등학교, 아동센터를 찾으며 아이들에게 동네 지도를 그리게 하고 아이들 스스로 장소가 갖는 이미지를 재창조해 작품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있다.
“요즘 아이들은 주입식 교육에 익숙하잖아요. 그러한 틀을 깨 주고 싶었어요. 예술이라는 세계는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내는 창조의 과정이거든요. 그래서 동네 지도라는 매개체를 통해 예술이라 는 장르에는 틀이 없고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한 장르로 넘나들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 교육프로그램에도 참여하게 되었어요.”
현재 신량섭 작가는 량그라픽스 공간에서 아이들이 능동적으로 예술을 체험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미술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내년에 있을 소리풍경지도 프로젝트 시리즈 전시를 준비하며 더 다양한 장르를 활용해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자 한다. 그는 영역을 뛰어넘는 판화의 다양한 변화와 융합, 독특한 성질을 가진 표현 방법으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토대를 마련하고 있다. 판화작가라는 프레
임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그의 작품 세계는 한 번쯤 충분히 들여다볼 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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