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을 연결하는 매개역할로 지역발전 선도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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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을 연결하는 매개역할로 지역발전 선도하길”
  • 진영봉 기자
  • 승인 2007.11.18 17: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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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세 전 재경이천시민회장

이천고등학교 동문회장, 재경시민회장 등 다양한 지역사랑 활동
10여년간 영농일지 써가면서 농사짓는 것이 ‘이제는 큰 보람’
남양브라인드, 대성엔지니어링 창업 등 사업가로 ‘성공신화’

“지역신문은 출향인들과 지역을 연결하는 중요한 매개체다. 지역신문이 출향인과 지역주민들간 매개역할을 원활하게 진행할 때 지역이 발전하는 원동력이 된다.
특히 지역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현안사항이 있을 경우 지역신문이 중앙에서 활동하는 출향인들과 지역을 연결한다면 쉽게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지역이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IMF경제위기의 파고가 세차게 불던 지난 97년부터 2001년까지 재경이천시민회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재경이천시민회를 반석위에 올려놓는 역할을 담당했던 김정세(68) 전 재경이천시민회장이 창간 14주년을 맞는 이천저널에 바라는 말이다.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참여하는 재경이천시민회 되어야 발전가능
IMF라는 어려운 시기에 재경시민회장을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기금조성을 통해 지역인재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는 한편 회원 상호간 화합을 도모하는데 기여한 김 전 회장은 “모두가 어렵게 생활하는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회원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재경시민회의 부활을 위해 노력했다”며 “경제적으로는 어려웠으나 당시 재경시민회 김태익 사무국장이 많은 역할을 담당해 줘 오히려 장학기금이나 시민회 기금을 더 많이 확보했었다”며 당시를 회상한다.
경제위기속에 재경이천시민회 회장으로 활동함으로써 능력을 발휘한 김 전 회장은 같은 시기에 이천고등학교 총동문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지역사랑과 모교사랑의 끈을 이어간다.
이천고등학교 1회 졸업생으로 96년부터 7년동안 총동문회장으로 모교사랑을 실천한 그는 “재경이천시민회나 이천고등학교 동문회 등이 발전하고 제 역할을 다하려면 무엇보다 젊은 회원들이 확보되어야 한다”며 젊은 회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한 시민회와 동문회의 발전론을 강조한다.

컴퓨터 자동조각기 국내 최초 개발 등 사업에서도 탁월한 능력
어려운 시기에도 불구하고 활발하게 고향사랑을 실천한 그는 지난 71년부터 30여년간 남양브라인드라는 제조업체를 운영하면서 기업활동에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차양막과 버티칼 등을 제작하는 업체를 운영하던 그는 사업과 관련한 특허출원을 받을 정도로 전문가로서 평가를 받고 나름대로의 성공을 거둔다.
남양브라인드를 운영하면서 지난 89년에는 대성엔지니어링이라는 제조업체를 창업한 그는 국내 최초로 컴퓨터로 자동으로 금속을 조형할 수 있는 컴퓨터 자동조각기를 개발함으로써 복잡하고 어렵게 진행되던 작업을 정밀하고 간편하게 만드는데 성공한다.
30여년간 제조업체를 운영하면서 경제일선에서 활약한 그는 “광주나 용인을 돌아보면 많은 발전을 거듭했는데 고향인 이천의 경우 발전이 더디게 진행돼 안타깝다”며 “이천지역의 경우 수도권정비계획법과 팔당상수원보호구역 등 각종 규제로 인해 발전이 더디게 진행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한다.
“각종 규제로 발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천지역이 발전하려면 앞으로 지역과 출향인간 연대강화를 통해 불합리한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총체적인 노력이 필요하며 출향인과 지역을 연결하는 매개체 역할을 지역신문이 담당해야 한다”며 지역발전을 위한 조언과 지역신문의 역할론에 대한 의견을 제시한다.
각종 사업을 성공적으로 진행하던 그는 IMF 경제위기가 몰아치자 지난 98년 대성엔지니어링을 정리하고 지난 2000년에는 30여년간 몸담아 오던 남양브라인드에서도 손을 떼면서 고향인 부발을 오가면서 농사를 짓고 있다.

1주일에 2~3회 부발에서 밭농사 지으면서 ‘고향 땅’ 일구기도
10여년간 밭농사와 논농사를 직접 지으면서 고향 땅의 소중함을 몸으로 체험하고 있는 그는 “서울에서 사업체만 운영하다보니 처음 농사를 지을 때 많은 실패를 거듭했었다”며 당시를 회상한다.
사업체 운영에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던 그였지만 직접 경작하는 농사는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처음에 밭농사를 시작할 당시 심었던 배추가 모두 죽거나 제대로 자라지 않아 많은 고생을 했다”는 그는 어려운 밭농사를 터득하기 위해 수 년 동안 매일매일 진행되는 영농작업을 일지로 작성하는 열의를 보인다.
“7~8년동안 영농일지를 작성하다보니 이제는 날짜별로 무슨 일을 진행해야 하는지 정확한 데이터가 마련됐으며 이를 통해 농사를 짓다보니 작황이 그런대로 괜찮다”며 환하게 웃는 그는 “10여년간 일주일에 2~3회씩 고향을 찾아 밭농사와 논농사를 짓다보니 고향땅의 소중함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됐다”며 고향사랑에 대한 남다른 경험을 털어 놓는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논농사는 하지 못하지만 밭농사를 짓기 위해 고향을 자주 찾게 되면서 고향소식을 접하다보니 고향사랑이 절로 난다”는 그는 밭에서 직접 가꾼 배추나 무 등을 지인들에게 나누어주는 일이 가장 큰 보람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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