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환 시민포럼 대표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기를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누가복음 2장14절) 그리스도의 탄생을 성서를 통해서 이해할 수 있다.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에게도, 동방박사 세 사람이 말구유간에 예수께서 태어 났을 때에 황금과 유향과 몰 약 을 예물로 드린 장면이 성서에 기록 되여 있다. 크리스마스 즉 성탄은 예수께서 탄생함을 기념하는 것이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백화점에 있는 산타할아버지가 어린이들에게 푸짐한 선물을 나누어 주는 장면들이 있었다. ‘거룩하고 엄숙한’ 예수께서 탄생한 그 깊은 의미는 숨겨진 채 사치와 쾌락의 징글벨을 부추기며 상품을 판매하기 위한 이벤트의 기회로만 부각 되어서는 안 된다.
‘위대한 것을 위대하다고 깨닫지 못한 것은 야만이다’라고 시인 괴테는 말했다. 세기와 국경과 이념을 초월하여 전 세계인이 고요한밤, 거룩한 밤하고 찬송을 부르면서 축제의 분위기속에 맞이하는 예수님의 탄생이 나에게는 무슨 의미가 있고 성탄의 참된 메시지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진지한 생각을 한번쯤은 하면서 성탄절을 맞이 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성탄은 예수께서 2천년 전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사건을 기념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태어나신 정확한 날짜는 알 수 없다. 예수님의 탄생을 12월 25일로 한 것은 사실적 인 의미보다 상징적인 의미로 받아 들여야 한다.
원래 로마에서는 12월25일을 태양신의 탄일로 지내었는데 로마인들의 마트라 숭배를 타파하기 위하여 로마교회가 이날을 참 빛이시며 정의의 태양이신 그리스도의 탄생축일로 지내게 된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 하고 축하하는 것은 단지 2천전에 있었던 과거의 사건을 기념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데 있다. 따라서 구유 앞에 기도함은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와 신비 앞에 경의를 표하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는데 있다.
크리스마스는 모든 인간의 소원과 갈망을 채워주는 구세주가 오신 날이다. 사람이면 누구나 지닌 그 영원한 동경을, 그 간절한 소망을 이룩해주는 메시아가 오신 날이다. 이는 생명과 구원의 날이다. 온 인류에게 기쁨을, 평화를 주는 날이다. 예수님의 생이 우리에게는 희망을, 그것도 일시적인 희망이 아니라 영원한 희망을 안겨 주고 삶의 의미와 가치관을 새롭게 조명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그같이 참된 기쁨이 없이 방황하고 있다. 주위가 너무 어둠에 싸여 있다. 우리는 참으로 안팎으로 어려운 시기에 처해 있다. 태산이 나의 앞길을, 우리 모두의 나라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삶에 지쳐 있다. 그래서 모든 것에 대하여 회의와 불신에 빠져 있다. 나라에서 무슨 말을 해도, 정치지도자가 무슨 말을 해도, 교회에서 무슨 이야기를 해도 그것이 곧이 들리지 않고 있다. 그만큼 나라도, 정치지도자도, 교회도 신뢰를 잃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바로 이 회의와 이 절망적인 상황 때문에 돌파구를 찾아보려고 기대하고 있는 것이 인간이다. 인정이 아쉽고 이해와 진실이 아쉽다. 나를 받아 줄 따듯한 마음, 나를 일으켜 줄 힘찬 팔, 내 모든 상처를 어루만져줄 부드러운 손길은 없는지, 삶의 보람을 느끼지 못하면서도, 절망 직전에 서 있으면서도 참으로 인생의 의미는 없는지, 빛은 없는지 계속 찾고 있다.
나는 이 모든 괴로워 하는 이들과 마주 앉아 이야기 하고 싶다. 그들의 고통, 그들의 슬픔을 나누고 싶다. 그리하여 모든 것을 믿을 수 없다 해도 어두운 밤을 밝게, 외로움과 슬픔을 환희와 위로로 바꾸어 놓은 그리스도만은 믿을 수 있고 그분만은 우리가 마지막까지 의탁할 수 있는 분임을 말하고 싶다.
2천년동안 끊임없이 세계인들이 기리는 이 성탄 축제에 좀더 적극적으로 다가선다면 의외로 자신의 인생에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탄생의 축복이 온 누리에 임하는 성탄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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