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태호 혜성기획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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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태호 혜성기획 대표
  • 이천뉴스
  • 승인 2008.01.18 15:2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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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말 하지 말고, 남의 가슴에 못 박지 않는 정직한 삶이 인생의 지표”
이천고 졸업후 경동시장 근처로 상경해 갖은 고생하고 자수성가
35년간 경동시장에서 한약제분소와 한약방에서 쓰이는 자재판매
비닐업계 투신 1년만에 전국 최고 매출올린 혜성같은 사람 평가
고학으로 대학졸업후 과외활동부터 가정교사 등 안 해 본일 없어


“내가 어릴 때 고향인 이천시 백사면 도립에서는 누구네 집에 제사가 있고 누구네 집에 누가 생일이라는 사실을 동네사람들이 알 정도로 이웃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또한 당시에는 밤 늦은 시간 제사가 끝나면 어르신들을 집으로 모셔와 함께 음복하고 제사밥을 나누어 먹는 등 정감어린 동네였다”

백사면 도립에서 태어나 백사초등학교와 이천북중학교, 이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상경해 어렵게 자수성가한 혜성기획 엄태호(63) 사장이 말하는 고향의 정취다. 빈대떡 하나를 해 먹어도 동네주민들과 나누어먹던 어린 시절 고향을 떠올리는 엄 사장은 “도립리의 경우 엄씨 일가가 많이 사는 집성촌으로 다른 동네와 달리 이웃간의 정이 넘쳐나는 곳으로 동네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든 주민들이 함께 할 정도로 이웃사랑이과 관심이 넘쳐나는 곳 이었다”며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동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모든 동네사람들이 알정도로 사랑이 넘치던 마을은 산업화의 여파와 서울사람들이 전원주택을 건설하면서 도립리로 이주해 오면서 또다른 모습으로 변화한다. “따뜻한 정으로 넘쳐나던 도립리는 현재 산수유축제가 개최되는 한편 외지 사람들이 전원주택을 지으면서 이주해와 예전과 같은 정취는 사라졌다”고 말하는 그는 “당시 동네 어르신들께 세배를 가지 않으면 예의없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나 지금은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를 정도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을 정도로 삭막해진 것이 사실”이라고 말한다.

이천향교 전학으로 활동할 정도로 예의범절을 중요시하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린 시절부터 예의와 가정, 이웃의 소중함을 일깨운 그는 “산업화와 수도권에 위치한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시골 땅값이 상승하자 부모님의 주검 앞에서 형제간 다툼이 벌어지는 현실을 보면 한심하기 그지없다”며 가정의 소중함과 효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10여리를 걸어 다녔지만 중고시절 개근상 받을 정도로 성실했다
도립리 엄씨 집성촌에서 태어나 백사초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백사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도지사상을 수상했는데 당시 도지사상을 수상할 경우 중학교 1년 수업료를 면제받는 장학제도가 있어 장학금을 받으면서 중학교를 다녔다”며 “도립리부터 이천북중학교와 이천고등학교까지 10여리가 넘는 거리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걸어 다녔지만 개근상를 받을 정도로 열심히 생활했다”며 학창시절을 떠올린다.

학창시절 열심히 공부했던 그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 졸업을 두달 앞두고 서울로 상경해 고학의 길을 걷는다. “학창시절 공부를 조금 했지만 가정형편이 넉넉지 않아 혼자서 학비를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말하는 그는 “학비가 들지 않는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3수를 하면서 현재 고려대학교로 편입된 우석대학교를 입학하고 과외활동과 가정교사 등의 아르바이트를 통해 학교를 졸업했다”며 어려웠던 학창시절을 회상한다.

어렵게 대학을 졸업했으나 그의 고생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를 모집하고 학생을 모집하면서 활동영역을 넓힌 과외사업을 전개하는 한편 크리스마스 때면 제기동 경동시장을 돌아다니며 크리스마스 트리를 제작해주는 아르바이트를 전개하기도 한다. 특히 그는 군대를 제대한 후 대학졸업생인 학력을 속이고 자전거로 거울을 배달하는 일을 하게 된다. “당시 전국 거울가게를 주름잡던 남광사라는 거울도매상에서 자전거로 거울 배달하는 일을 시작했는데 우연한 기회에 사장이 학력을 알게 돼 덕수약국 가정교사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됐다”고 말하는 그는 “가정교사로 벌이는 괜찮았으나 집에 꿈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고 가정교사직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찾았다”고 말한다.

대학졸업 속이고 자전거로 거울 배달업부터 안 해 본일 없이 고생
가정교사직을 그만 둔 그는 소개를 받아 삼영화학이라는 비닐원단을 판매하는 곳을 찾는다. 이곳에서 꿈을 키우기 시작한 그는 1년만에 전국 최고의 매상을 올리는 성과를 올리면서 비닐업계의 새로운 별로 등장한다. 실제로 당시 그는 비닐업계 사장들이 모인 장소에서 ‘혜성같이 나타난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많은 스카우트 제의를 받기도 한다. 비닐업계에 투신한 지 6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그는 자신의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고 원단을 사서 거래처에 판매하는 일을 시작했지만 두 달도 되기 전에 부가가치세라는 제도가 생기면서 사업을 포기하게 된다.

또 한변의 시련을 겪은 그는 서울로 상경하면서부터 살던 경동시장에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다. “당시 경동시장에는 한약을 제조하고 한약재를 판매하는 곳이 많았는데 한약재를 조제할 경우 갖가지 한약재를 갈아서 환으로 만들어주는 제분소가 한곳밖에 없어 한약상들이 어려움을 겪는다는 사실을 알게 돼 제분소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하는 그는 “어렵게 한약 만드는 제분기계를 구입해 30년동안 제분사업을 전개했다”고 말한다. 30년 한약 제분사업을 전개하면서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그는 “제분업이라는 것이 법적인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현령비현령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며 “5년전 제분업을 그만두고 경동시장에서의 인연을 모태로 한약방에 쓰이는 2천여가지의 한약기자재를 판매하는 일을 시작했다”고 말한다.

‘거짓말하지 말고, 남의 가슴에 못 박지 않는 삶이 중요하다’는 좌우명과 함께 ‘신용이 재산’이라는 삶의 철학을 발판으로 어려운 역경을 극복하고 희망을 이어오고 있는 그는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재경이천시민회나 재경 이천고등학교 동문회 등 고향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다니는 고향에 대한 애정을 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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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2022-02-13 22:01:24
정말 존경스럽네요 잘 읽고 갑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