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천인사(歸天人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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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천인사(歸天人事)
  • 이천뉴스
  • 승인 2008.02.25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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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여 전에 용인에 있는 종합병원에 근무할 당시 겪었던 한 환자분에 대한 기록입니다. 어느 가을날에 장엄한 한 생명의 마지막을 곁에서 보면서 느꼈던 개인적인 경험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몸으로 느끼는 쌀쌀함은 절기가 바뀌면서 오늘이 24절기 중 처서임을 알기에 충분했다.
이렇게 계절은 벌써 가을의 문턱으로 들어서고 있다. 대학병원의 전임의 과정을 마치고 용인에 있는 이 병원에 온 지도 벌써 6개월이 지났다.

작년 이맘 때 나는 대학병원에 남아야 할지 아니면 고향으로 내려가 홀로 계신 아버지 곁에서 개원을 해야 할지를 두고 한참 고민을 하고 있었다.
고민의 끝에 나는 대학교수의 꿈을 접고 1차 또는 2차 진료의사로의 길을 모색하던 중 고향인 이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인 용인에 있는 병원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깊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꿈과 현실은 이렇게 나의 생활 속에서 서로의 접점을 찾아 자리매김을 하고 있었다.

대학에 남지 못한 아쉬움은 다소 있었지만 봉직의 생활을 시작한 나는 여러 가지 면에서 만족해하며 특히 가끔 잠 못 이룰 정도의 설레임과 감동의 시간을 경험을 하였다.
지금부터 들려줄 얘기는 한 노년의 환자가 죽음을 맞이하여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죽음에 대한 태도를 보여 준 것이다. 죽음 앞에서 차분하게 삶을 정리하는 그의 장엄한 임종을 지켜보고 난 뒤 어떻게 생을 마감해야 하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따스한 봄날 온 산이 푸르름으로 물들고 벚꽃의 잎이 흐드러지게 날리는 4월 중순에 내 진료실로 삼십대 후반의 한 부인이 찾아왔다. 아버지께서 폐암으로 진단을 받으셨으나 수술이 불가하여 항암 화학요법 치료 권유를 받았는데 아버지 당신께서 치료를 거부해서 딸들이 간병하기 위해 모셔 왔다고 했다. 말기 암환자의 호스피스 치료를 목적으로 입원시키기로 하고 그로부터 이틀 후에 그 할아버지께서 외래로 내원하셨다.

내원 당시 할아버지께서는 약간의 호흡곤란과 핏기 없는 창백한 혈색 이외엔 특이 증상이 없었다. 하지만 입원 직전에 찍은 흉부 엑스선상 좌 폐야를 반 이상 차지하는 종물을 관찰할 수 있었다. 이는 1개월 전에 촬영한 사진과 비교해 보았을 때 2배 이상 커져 있어 종양의 성장속도가 상당히 빠르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호흡곤란 증세도 최근에 더욱 악화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진료실로 들어오신 할아버지께서는 진료실로 들어 오시자마자 치료 거부 결정을 하게 된 당신의 결심을 설명하시느라 거친 숨소리로 헐떡이며 말씀을 늘어놓으셨다. 얼마 전 당신 친구 분께서 폐암 선고를 받고 항암치료를 받으시며 암과의 투병생활 끝에 하늘로 보낸 후 가족 모르게 인근 병원에서 흉부엑스선 검사를 받고 뜻하지 않게 폐암 말기 진단을 받으셨다고 했다.

가족들을 불러 당신의 병의 진행 상태를 본인이 설명하시고 치료받지 않겠다는 결심도 전달하시게 됐다는 말씀을 하셨다. 나는 밀려드는 환자들 때문에 중간에 말씀을 끊고 싶었지만 호흡곤란을 느끼면서도 그렇게 열심히 당신의 치료 거부에 대한 각오를 말씀하셔서 끝까지 들어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숨을 헐떡이며 한번 말씀을 시작하시면 기침으로 콜록콜록 하실 때까지 청산유수처럼 말씀을 이어 가시는데 오히려 내가 숨찰 정도였다. 옆에 있던 따님과 부인이 빙그레 웃으시며 말씀하시는 것을 막을 정도였다.

입원 후에 호흡곤란이 호전되면 퇴원하셨다가 다시 숨이 차면 입원하시길 반복하시던 할아버지께선 입원실을 답답해 하셨다. 한 이틀 입원하셨다가 따님 집에 가셨다가 입원하시길 반복하였다. 한번은 할아버지께서 너무 식욕이 떨어져 입원은 하지 않고 영양제를 맞으시겠다고 응급실로 내원하셨다. 나는 호흡곤란에 대한 처방을 지시하고 다른 진료실로 발걸음을 돌렸는데 할아버지께서는 가벼운 목례를 하시며 빙긋 웃으며 손을 흔드셨다.

나는 그 때 할아버지 미소에서 암에 대한 환자의 두려움 대신에 차분함과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나같이 젊은 의사에게 목례로 인사를 하면서 손을 흔들어 건재함을 과시하려 했던 노인의 얼굴에서 평화로움과 자식 같은 젊은 의사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 후로 약 3개월간 응급실과 입원실을 번갈아 가며 수차례 내원하셨다. 시간이 지날수록 겨드랑이에 만져졌던 종물은 점점 더 커져 갔다. 나는 지극 정성으로 아버지를 간호 하던 따님들과 부인 그리고 사위들에게 환자의 상태를 설명하고 병의 진행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병은 악화되어 흉부엑스선 사진에는 왼쪽 폐가 거의 하얗게 변하고 있었다. 할아버지께서는 아침회진을 돌 때면 왼쪽으로 누워서야 가까스로 10분 남짓 선잠을 주무신다고 하시며 목 위까지 차오르는 호흡곤란의 고통을 쉰 소리로 또 장황하게 말씀하셨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점점 말씀하시는 시간이 줄어들었고 쉰 목소리는 내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였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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