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식 중국 동북사범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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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식 중국 동북사범대학 교수
  • 이천뉴스
  • 승인 2008.02.25 15: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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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에게 검증받아 소신있는 지역신문 만들어야
한중일 넘나드는 학술활동으로 이천인의 명예를 높여
80년대초 ‘이천새소식’이라는 신문발간 시작으로 이천문화보, 이천신문, 이천저널 창간 주도하기도

이천지역 초창기 언론을 이끌면서 오늘날 지역언론의 모태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박인식 동국사범대학 교수를 만났다. 박 교수는 이천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천중학교와 이천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중앙대학 대학원 언론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언론학 석사학위를 받으면서 이천지역에서 지역신문을 창간하고 지역신문 발전의 모태를 만든 박 교수는 일본국립 야마구치 대학 대학원에서 정치 언론학 박사를 학위를 취득한다.
미국과 일본을 거치면서 언론학을 연구한 그는 일본 국립대학 연구원, 일본국립 동경 가쿠게이 대학을 경유해서 현재 중국 동북사범대학 교수로 활동함으로써 한중일을 넘나드는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최근 고향인 이천을 찾은 박 교수를 만나 지역언론의 역할과 이천지역 언론의 나갈 방향, 한중일 국제정세 등에 대해 들어본다.

1. 오랫동안 이천서 언론인으로서 활동하다 고향에 오셔서 고향을 보신 소감은 무엇인지요?
▶이천에 와보니 그동안 많이 변했군요. 인구도 급격히 증가한 것 같고 도시다운 면모를 갖추고 있지만 사회구조가 무척 복잡해 졌군요. 아직도 교육시설이 현저하게 부족하는 것과 고등 교육기간이 너무 적군요. 일본과 중국에서 살다 보니일본은 소도시 조차에도 고등시설과 풍부한 교육기관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은 급속한 경제 성장과 더불어 교육시설 확충과 고급인력을 양성기관이 끊임없이 설립되고 있어요. 대국답다는 감탄이 절로 나올 때가 있습니다.
제가 가르치고 있는 한 단과 대학 학생수가 2만명에 전원 기숙사 생활하면서 대학생들에 강제 자율학급도 시키고 있어요. 교육에 필요한 시설도 매일매일 새롭게 갖추고 있는 걸 보고 놀라게 됩니다.
이천의 시민의 삶의 환경개선이나 교육기관은 10여전 과 그다지 달라진 것이 없어 좀 아쉽군요. 그러나 제 고향이라서 그런지 늘 이천은 정감있는 곳입니다.

2. 이천에 계셨을 때 초창기 신문을 두루 창간하신 것 같은데 이천의 초창기의 신문에 대해서 말씀해주십시오.
▶몇 분에 의해서 80년 초에 이천 새소식이란 신문이 잠시 발간된 적이 있었는데 검열과 열악한 환경으로 바로 폐간이 되었고 그 이후에 본격적으로 신문다운 면모를 갖춰 월간으로 발행되었던 것이 86년에 이천문화보 였습니다.

이 당시는 언론 기본법이 있어 기존의 대 기업 신문이외의 신규 신문발행을 금하게 되어 있었습니다.그래서 편법적으로 신문에 뜻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이천문화원과 연계해 2년 넘게 발행 한적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 신문이 이천의 신문 기원으로 볼 수있지요.이 이후에 언론기본법이 정기 간행물 법으로 개정되면서 지역신문을 발행 할 수있는 길이 열려 이천문화보를 만들던 사람들이 정식으로 정부에 등록해 발행한 신문이 이천신문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이천정론, 이천시론, 설봉신문, 이천 저널 등 많은 신문이 창간 되었지만 전문인력부족과 발행자금부족 등의 이런 저런 이유로 사주가 계속해서 바뀌면서 현재에 이르렀다고 볼 수있지요.
제가 직접 신문 창간과 발행에 관여 했던 신문은 이천문화보, 이천신문, 이천정론, 이천시론, 이천저널 등이었고 저는 주로 발행인이나 편집인으로 활동했지요.특히 이천저널은 창간 당시 유료구독자가 많아 매회 2만부를 넘게 발행하였고 이천시민이 자발적 참여로 5억원 규모의 언론 법인체를 만들었지요.

3. 현재 이천에서 이천저널. 이천신문, 설봉신문 등이 발행되고 있는데 박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지역신문의 나갈 방향은 무었인지요?
▶기본적으로 언론매체는 교과서 적인 말로 공정보도이지만 중요한 것은 신문은 저마다 뚜렷한 이념이나 칼라를 가지고 있어서 그 틀에서 소신 보도를 하는 것입니다.지방 자치제도 실시이후 선거가 많아지고 그러다 보니 지역민들이 인심도 험악해지고 분열되고 있습니다.거기에다 일부 지역신문은 이념도 없이 이 같은 분위기에 편승해 이권개입이나 선거후보자의 불평등 보도가 이뤄지고 있지요.

이제는 지역신문도 뉴스 보도만이 우선하는 것이 아니라 선거법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자 신문에 맞는 후보자를 공개하고 지지 이유를 밝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난립하는 지역신문도 지역민들에 의해서 검증을 받아 정말로 소신있는 지역신문이 시민에 의해 커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4.지금 전국적으로 4월 국회의원 선거로 각 지역에서는 출마 후보자들이나 정당 공천 등의 분위기 어수선 합니다만 이천의 국회의원은 어떤 인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그 사람의 능력이나 청렴성 및 추진력등을 평가해야 겠지요.그런데 이 같은 자격을 갖춘 인물을 가려 뽑는 것이 쉽지 않지요.그래서 후보자가 내건 매니페스트(manifest)를 구체적으로 검증하고 실천여부를 고려해야 합니다.

특히 의식있는 시민단체나 지역언론에서는 토론회나 인터뷰를 통해서 실천여부를 후보자로 부터 확약을 받아 알리면서 유권자의 판단에 맡겨야 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유권자가 선택한 인물이라면 틀림없이 지역과 국가를 위해 제 역할를 다 할 수있을 겁니다.

5.박교수님이 생각하시에 미래에 이천시가 어떤 도시로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제는 이천을 그저 대한민국의 하나의 작은 도시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시야를 넓혀서 국제사회속의 이천을 생각하고 발전 시켜나가야 합니다. 역시 시민들의 의식도 국제사회속의 시민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이제는 정보 전달매체의 발달로 전세계가 뉴스를 공유하게 되었고 인간의 삶의 질이 중시되고 있습니다.

좀 좋치 못한 예 일지 몰라도 얼마전 특전사 군부대 이천 이전반대 시위를 하는 과정의 시위현장에서 돼지를 살도살하고, 이천 냉동 창고 화재는 국제사회에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데 충분했습니다. 일본. 미국 중국에서도 이 같은 사실을 신속하게 뉴스로 내보내면서 외국인들의 질타와 여론이 형성되는 것을 봤습니다.

이같은 뉴스를 접한 외국인들은 한국의 이천을 쉽게 기억할 수 있을 겁니다. 바로 이것이 이천이 국제사회속에 있다는 증거입니다.반대로 이천에 관한 좋은 뉴스가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다면 얼마 좋겠습니까?이천에 거주하는 인물중에 노벨상 수상자 나온다든가 역사길이 남을 정치가나 학자 등등이 배출되었다면 국제사회가 관심을 가질 것이면 타 도시인들 이천를 부러워 할 것입니다.

이 같은 환경을 가진 이천이 되려면 자치단체의 자원 확보를 위한 공장 유치와 개발등도 중요하지만 고등교육시설 확보, 인재 육성, 양질의 삶의 환경 등을 우선 과제 설정해놔야 합니다.
그래서 길이 길이 후손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살수 있는 이천으로 성장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6.박교수님께서는 어떻게 해서 언론인에서 학자의 길로 가시게 되었습니까?
▶제 얘기를 하려고 하니까 대답하기가 어려워 지는군요.
사실 저는 80년대 후반에 대학원에서 신문 방송학을 전공하고 나서 미국에 유학하려고 했지만 그 전부터 지역신문의 중요성에 매료되어 신문일을 벗어날 수없었습니다.90년 초반에 신문을 발행하면서도 미국에 유학을 두번씩이나 떠났지만 번번히 적응이 되지 않아 이천으로 되돌아 신문 사업을 계속했지요. 그러다가 신문실무를 긴세월하다 보니 메스커뮤케이션 이론을 공부해야 겠다는 생각으로 간 곳이 일본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어를 전혀 알 지 못했던 당시 일본사회에 적응하는 것이 정말 힘들었습니다. 독학으로 일본어를 터득하고 일본 국립대학 박사과정에 입학할 수있었습니다.그러나 고난의 길은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시작되었지요.매일 일본 전국의 대학 도서관과 일본 국회 도서관, 일본 외무성. 일본 황실에 있는 자료 수집활동은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듯한 작업이었습니다. 보지않는 글자, 고문서의 해독은 그야 말로 저의 마지막 인내를 쥐어 짜내는 연구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렇게 어렵다는 일본 국립대학 박사학위를 최 단기 3년으로 취득할 수있었습니다.

이 이후에 고향인 이천으로 와서 뭔가 활동을 하고 싶었지만 지금까지 연구해온 많은 내용를 대학에서 가르치는 일도 중요하다고 생각되어 일본국립대학 강단에 서게 되었지요.
그러다 중국국립 동북사범대학에서 한국, 일본 중국 등 3국의 정치 언론을 가르칠 수있는 사람이 필요했던 같습니다.그래서 현재 중국대학의 교수로 재직하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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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2008-04-01 16:50:38
이천에 이렇게 훌륭한분이 계셨군요...
이천저널 설립자로 일하실때 저도 본적이 있는 분이군요.
반갑습니다. 교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