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천인사(歸天人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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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천인사(歸天人事)
  • 이천뉴스
  • 승인 2008.03.03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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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에 이어서]
암 자체에 의한 통증은 심하지 않았지만 기관지를 막아서 폐가 산소를 받아들일 공간이 줄어들어 혈중 산소치가 점점 떨어지고 있었고 저산소증에 의한 환자의 호흡곤란은 악화되었다. 최후로 사용했던 마약성 진통제와 약물로 일주일 정도는 훨씬 좋아지셨다. 병실 복도를 뒷짐을 지고 다니시던 할아버지의 표정은 행복해 보였다. 힘들고 고통스런 호흡곤란의 시간을 아주 잠시나마 약의 힘을 의지해 좋아질 수 있었던 유한의 시간을 당신은 유유자적 즐기며 삶의 꼭지점에서 웃고 계셨다.


그것도 잠시 이튿날 아침 회진 중에 할아버지께선 눈을 잘 뜨지 못하면서 몇 번의 얕은 숨을 쉬고 난 뒤에 한꺼번에 깊숙히 숨을 몰아 쉬셨다. 잠시 눈을 뜨셨는데 의사가 온 것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흘깃 쳐다보시다가 도로 눈을 감으셨다. 할아버지 곁에는 언제나 따님과 할머니가 곁에 계셔서 회진을 마치면 꼭 따라 나오셔서 환자의 상태에 대한 설명을 듣기 원하셨다. 호흡곤란이 심해지고 흉부 사진 상 폐울혈이 악화되어 오래 버티기 힘들거라 말씀드렸다.

아침회진을 마치고 외래 환자를 보면서 내시경실을 들락거리며 바삐 외래 환자 진료를 하고 있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병실을 지나다가 할아버지 병실에 잠시 들렀다. 창백한 얼굴로 제대로 눕지도 못하시고 벽에 걸터앉은 채 힘겨워 하셨다.

가족들이 모두 모였고 할아버지 상태를 전해 듣고 먼 곳에서 온 듯한 손자 소녀들 곁에서 할아버지는 삶의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며 가쁘고 깊은 숨을 쉬고 계셨다. 산소 포화도는 70%를 넘지 않았고 눈의 초점은 점점 흐릿해져 갔다. 당시 혈압은 수축기 90mmHg을 넘지 못하였다.
다시 한번 할아버지 상태가 좋지 않음을 설명 드렸고 진료실로 내려와서 오후 진료를 준비했다. 오후에는 대장내시경 검사가 있어서 외래진료를 못보고 있었는데 3시쯤에 병동에서 날 찾는다는 연락이 왔다.

그 할아버지께서 날 찾는다는 것이었다. 얼굴이 창백하게 변하고 손발이 차가와지며 호흡곤란의 상태에서 그 힘든 숨을 참아 내시며 주치의인 날 보고 싶다고 간호사에게서 연락이 왔다.
검사를 마치고 병실문을 열었을 때 할아버지께서는 조그만 병실에 20-30명의 가족들에 둘러싸여 고개를 떨군 채 깊이 숨을 몰아쉬고 계셨다. 점심 때까지만 해도 잘 알아보지 못하시고 기운없이 쳐져 있던 할아버지께선 내가 병실로 들어서는 순간 축 늘어진 고개를 일으켜 세우시며 헐떡이는 숨을 들이켜셨다. 초점이 흔들리는 눈으로 날 쳐다보시며 내 손을 잡고 상체를 굽히시며 인사를 하시는 것이었다. 아주 가냘프게 입술의 떨림을 느낄 수 있었다. '고맙습니다.'라는 말씀임에 틀림없었다.

내 양손을 합장하듯이 잡으시며 앞으로 고꾸라지듯이 목례로 인사를 하셨다. 전에도 증상이 좋아지시면 '고맙습니다'라고 여러 번 반복하셨었는데..... 순간 나도 눈가에 눈물에 맺혔다. 그리고 다시 늦게 도착한 가족들을 한번씩 안으셨다. 그 모습을 뵙고 다시 진료실로 돌아온 후 30분을 채 넘기기 전에 할아버지는 숨을 거두셨다.

호흡이 멎었다는 병동 간호사의 연락을 받고 서둘러 달려가서 맥박과 호흡을 다시 한번 확인한 후 임종시간을 가족들에게 알렸다.
불과 하루 만에 갑자기 악화된 호흡곤란 증세로 할아버지께선 누구보다도 자신의 죽음이 가까이 오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고 마지막 숨을 고르시고 난 할아버지의 표정은 자신의 할 일을 다 마친 편안함과 안도감을 띠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5일쯤 지나 가족들이 조그만 케익을 갖고 내 진료실로 찾아 오셨다. 명복을 빌고 치료 및 간병의 노고에 감사의 말씀을 서로에게 전했다. 문득 내가 삶의 황혼이 되어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다달았을 때 할아버지처럼 사랑하는 가족의 품에서 아쉬움 없이 생을 마감할 수 있을까. 그리고 생의 마지막에서 잠시나마 의사와 환자의 인연으로 만나게 된 내 주치의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생을 마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삶과 죽음의 길목에서 어떤 이유로든 인연을 맺은 사람들에게 곱게 인사를 하고 떠날 수 있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손자 같은 의사에 대한 예의를 마지막 눈 감으실 때까지 다하신 할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의사로서의 사명과 보람을 느낀다. 이는 내가 평생 의사로서 살아가는 데 있어서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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