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탈된 지 90년이 넘은 망현산오층석탑은 그나마 반출 과정이 자세히 기록돼 있어 일제의 문화재 약탈사를 잘 보여준다. 이 석탑은 1918년 일본의 군납재벌 오쿠라 기하치로(大倉喜八郞)가 수탈해갔다. 오쿠라는 그 몇 해 전 경복궁에서 세자의 거처인 자선당을 통째로 도쿄의 자기 집으로 뜯어간 장본인이다. 집을 개조해 박물관을 열면서 ‘근사한 조선의 탑’을 놓고 싶어 2대 조선총독 하세가와 요시미치에게 청탁 편지를 보냈다.
오쿠라는 평양에 있는 석탑을 요청했지만, 총독부에서는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에 있어 이목을 끈다’는 이유로 거절하고 이천향교 근처에 서 있던 이 석탑을 보냈다. 이 석탑은 이미 3년 전 1915년 일본이 한일합방 5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경복궁에서 연 '조선물산공진회'의 행사장 장식을 위해 서울로 옮겨져 있었다.
문화재적 가치 이상인 이천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가칭)‘망현산 오층석탑’(일본식 표기: 이천향교방오층석탑) 되찾기 운동이 이천시 전역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이천문화원을 비롯한 이천지역 시민사회단체 23개 단체가 참여한 (가칭) 망현산오층석탑되찾기 범시민운동의 첫 신호탄이 될 추진위원회 결성식이 지난 16일 설봉공원에서 열렸다.석탑반환운동은 지난해 10월 석탑반환을 위한 1차 시민토론회를 시작으로, 문화원, 의제21, YMCA, 이원회, 이천예총, 환경운동연합 등 6개 단체가 지속적인 운동을 전개하여 왔다. 그러나 좀처럼 여론이 확산되지 않고 있던 가운데 지난 7월 이천시의회가 석탑반환운동과 관련한 예산안을 삭감하자, 여론이 들끓기 시작하면서 관내 시민사회단체들이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것이다.
추진위원회(상임위원장 이상구)에 따르면, 이날 추진위원회 결성식(오후 7시)에 앞서 오후 5시 도자센터에서 열린 ‘기념세미나’는 ‘망현산오층석탑 되찾기 범시민운동’의 의의와 향후 전략적 방안을 찾았다는데 그 의미가 크다는 설명이다.기념세미나에서는 추진위의 자문위원으로 위촉된 이천출신의 재일교포 김창진 선생과 문화유산정책연구소 황평우 소장의 발제를 통해 망현산오층석탑이 문화재적 가치로 반환운동을 전개한다면 국가 간의 외교문제로 확대될 여지가 있어 반환에 어려움이 크므로, 문화재적 가치를 떠나 이천시민의 정체성(상징물)과 당위성을 인식해 민간주도의 시민운동으로 전개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 이를 위해선 10년 아니 그이상의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시민단체의 지속적인 운동전개와 이천시와 정부의 지원을 꾀하면서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난 16일 오후 4시 이천향교 앞, (가칭)망현산오층석탑(일본식 표기 : 이천향교방오층석탑)되찾기 범시민운동 기념세미나를 1시간여 앞두고 이상구 문화원장, 이인수 문화원 사무국장, 김창진 자문위원, 박성재 재향군인회장, 이교선 이원회장, 이규선 이천예총 부회장은 옛 석탑이 있었던 자리를 다시 한 번 찾았다.
이 자리에서 추진위의 상임위원장인 이상구 문화원장은 “오늘은 첫 신호탄이 될 망현산오층석탑 되찾기 운동 추진위 결성식이 있습니다. 되찾을 수 있을지 아니 되찾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모릅니다. 하지만 오늘 20만 이천시민은 하나로 뭉칩니다. 우리 대에서 안 되면 우리 후손 대에서라도 찾아야 할 것”이라고 굳은 결의를 한다.
이천문화원을 비롯한 관내 23개 시민단체 참여
16일 오후 5시 도자센터 내 2층 세미나실, 150석에 달하는 좌석은 꽉 차고 더 이상 앉을 자리가 없어 행사장을 찾은 시민단체 관계자는 서서 세미나를 들어야 했다.처음에는 문화원, 의제21, YMCA, 이원회, 이천예총, 환경운동연합 등 6개 단체가 중심이 되어 전개한 반환운동이 이젠 총 24개 시민단체로 확대돼 많은 이들이 세미나를 찾게 되면서 예측 못했던 상황이 연출된 것. 특히 조병돈 시장, 권영천 부의장 및 시의원, 황규선, 이희규 전 국회의원, 유승우 전시장, 김문환 민주당 지역위원장 등 정관계 인사는 물론 향토협의회(전광재 회장) 및 연합동문회(정우현 회장) 기수별 회장들이 대거 참석해 시민단체 및 회원들의 열기를 짐작케 했다.
세미나에 앞서 조병돈 시장은 “현재 이천의 석탑문제를 떠나 국가적으로도 쇠고기, 독도, 이어도 등의 대외적인 문제가 많다”며 “이 난국을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할 것인가를 고민할 때, 이천의 ‘서희 선생’이 다시 나타나셔서 해결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조 시장은 또 “수탈 문화재인 망현산오층석탑을 되찾아 오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섣불리 일본의 감정을 건드려서도 안되며, 하다가 중간에 그만 둬서도 안된다”며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접근해, 많은 시간과 전략적인 방안 그리고 시민들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달라는 말도 못하는 조상돼서는 안 돼
오층석탑 되찾기 범시민운동 추진위원회 자문위원으로 위촉된 김창진 선생과 황평우 소장의 발제가 이어졌다.이천출신의 재일교포 김창진 선생(수탈문화재 환수 1인활동가)은 석탑을 발견하기까지의 경위와 일본 동경 내에 수많은 수탈된 우리나라의 문화재 사진을 보이며 운동의 당위성, 그리고 시민운동으로 전개해 나가야 한다는 방향성을 제시했다.
김 선생에 따르면, 2005년 9월 이천의 지역신문을 통해 향교방석탑이 동경에 있다는 글을 접한 후 이천문화원 이인수 국장을 통해 수소문한 끝에 동경 내에 오꾸라 호텔의 사설 박물관인 집고관에 자리한 것을 알게 됐다.
“집고관 주위를 살피다가 우리나라 석탑 두기가 눈에 보였습니다. 하나는 평양율리사터 석탑이었고 그보다 뒤편에 있는 석탑이 눈에 띄었습니다. 누구의 설명도 필요 없었습니다. 아마 어릴 때 헤어진 형제를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도 금방 알아보듯이 ‘바로 이 석탑이구나’라는 생각과 느낌이 탁하고 오는 것입니다.”
이후 김선생은 사진과 관련자료를 이천문화원에 보내 석탑의 반환운동을 전개한다. 그가 오늘이 있기까지 반환운동을 벌여야 하는 당위성은 간단하다. 먼 훗날 후손들이 석탑을 보고 문화재를 빼앗긴 못난 선조라고 생각할 것이며, 또 빼앗긴 석탑을 되돌려 달라는 말 한마디 못한 선조들도 참으로 딱한 선조들이라는 생각을 하면 어떻게서든 되돌려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고려 중후반기, 최대의 절터가 있었다
이후 진행된 황평우 소장의 ‘약탈문화재 환수를 위한 대응방안’ 발제는 망현산오층석탑의 예술학적 정치학적인 가치와 반환된 문화재의 사례들을 설명하고, 향후 반환 운동의 방향성을 제시했다.황 소장에 따르면, 석탑의 양식을 보면 고려 중후반에 건립된 것을 예측할 수 있으며, 기당분-몸통-지붕틀로 짜여진 석탑의 체감율은 일정하면서도 중심감이 잘 잡혀있다고.
또한 각 기단층별 옥괘석의 추녀끝은 버선코 모양으로 살짝 치켜올라가 당시 뛰어난 석탑 제조 기술의 일면을 보여준다.또 황 소장은 “고증학적으로 볼 때 양정여고의 훼손된 석탑과 향교의 위치상으로 고려 중후반 최대의 절터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으며, 이는 경주의 불국사와 마찬가지로 금당전 앞에 석가탑과 다보탑의 형식을 띈 1금당 2석탑 양식임을 알 수 있다”며 이는 “당시 불교 국가 고려시대임을 고려할 때 이천에 이만한 큰절을 지었다는 것은 당시 정치 문화 경제 예술의 정수가 녹아내려 있음을 알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는 당시 이천지역이 얼마나 큰 가치를 가졌는가와 이천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 뿌리임을 알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 고려 이후 조선시대에 들어 숭유억불 정책으로 절터가 서원이나 향교로 바뀌고, 일제시대 학교설립이 향교나 절터에 지어진 것을 볼 때 황 소장의 주장은 더욱 설득력이 있다.
세미나가 끝나고, 2부 범시민운동본부 결성식이 진행되는 오후 7시 설봉공원 야외대공연장에는 추진위 관계자와 시민들의 수도 천여명에 달했다.우귀식 이원회 사무국장의 사회로 진행된 결성식은 판소리와 살풀이의 기념공연을 시작으로 이상구 상임위원장의 인사말, 이현호 시의회의장의 격려사, 사업추진 경과 영상보고가 있었으며, 마지막으로 김경희 공동위원장의 결성선언문 낭독으로 끝을 맺었다.
이날 이현호 의장은 “일본이 수탈해 간 이천향교방오층석탑을 되찾아 와야 한다는데는 너나할 것 없이 이천시민 모두의 간절한 소망”이라며 “이젠 시민운동으로 전개해나가는 반환운동이 더욱 효과적이도록 이천시와 시의회는 적극적인 참여와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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