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政治人)의 열정과 균형판단
막스베버의「소명으로서의 정치」를 읽고
2013-03-20 유승우 국회의원
나는 최근 정치인의 소명(召命)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해답을 줄 수 있는 막스베버의 명저「소명으로서의 정치」를 일독하는 기회를 가졌다.
바로 어제 3월 17일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지 21일, 그리고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된지 47일 만에 가까스로 여야합의로 매듭을 지었다. 긴박하게 전개되는 국내외 상황을 감안할 때, 정치지도자의 정치부재와 정치력의 무능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이 짜증나는 정치풍토를 지켜보는 국민의 탄식과 실망감은 어떠하겠는가? 이러한 상황에서 진정한 정치지도자의 좌표는 무엇인가를 되돌아보는 차원에서도 이 책이 주는 의미는 크다고 생각한다.
저자인 막스베버는 1864년에 태어나 1920년 급성폐렴으로 별세하기 까지 독일 현대사회학의 창시자로 우뚝서는 업적을 남겼다. 그 외에도 역사학, 법학, 경제학, 정치학을 포함하는 사회전반에 걸쳐 독보적인 위치를 확립한 근세의 사회과학을 개척한 대학자이며 우리에게는 「프로테스탄트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관료제 이론」 의 저자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조선후기에 실학을 집대성하며 다방면에 걸쳐 정치의 지표서인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500여권을 저술한 다산 정약용에 비유할 만하다. 베버의 정치적 핵심사상은 “신념의 윤리” 대 “책임의 윤리”가 이율배반적 구조를 가지면서 어떻게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가를 분석하려고 노력 하는데 있다. 그는 대립적이고 양립 할 수 없는 두 개의 명제가 동시에 가능하며 이것이 정치행위의 본질적 측면이라고 하였다. 여기 그의 정치학 강의의 일부를 발췌하여 참고 하고져 한다.
2. 정치인에게 필요한 자질
베버는 정치인이 갖추어야 할 세가지 요소로서 열정, 책임감, 균형적 판단을 들고 있다. 열정은 정치행위를 하는데 필요한 소신이며 에너지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열정은 객관적 의미를 갖는 대의(大義)이지만 정치인은 단지 열정만을 가져서는 안되며 대의에 대한 책임성이 행동을 이끄는 길잡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 ‘균형적 판단’이라고 하겠다. 이 세가지 요소는 서로 독립적이라기보다는 상호 연관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특히 균형적 판단은 훌륭한 정치인이 지녀야 할 내적 집중력과 평정 속에서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며 사물과 사람에 대해 거리를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이다. 거리감의 상실은 어느 정치가에게나 치명적인 죄과(罪過)가운데 하나로서 정치적 무능력자로 비판 받기 때문이다.
3. 허영심에 대한 자기통제력
정치가 진정한 인간행위가 되려면 헌신적인 열정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단순한 아마츄어적 정치인과 구별해 주는 것은 영혼에 대한 자기 통제력이 있어야 한다. 정치인은 매일 매순간 자신의 내부로부터 스스로를 위협하는 사소하고도 지극히 인간적인 적과 싸워 이겨야만 하는데 이 점이 바로 허영심(虛榮心)이다. 이 허영심은 대의에 대한 거리감을 유지하지 못하게 하는 치명적인 적이다. 이는 바로 객관성의 결여와 책임성의 결여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허영심은 가능한 한 자기 자신을 전면에 내세우고 싶어하는 욕구 때문에 책임성과 객관성을 무시하고 싶어하는 유혹을 갖고 있다. 소위 충격효과에 의존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항상 배우가 되어버릴 위험뿐만 아니라 자기행동에 대해 가져야 할 ‘책임성’을 가볍게 여기고 자신이 만들어낸 소신과 인상에만 연연하게 될 위험에 처하게 된다. 또한 ‘객관성’의 결여는 그로 하여금 국가와 국민을 위한 진정한 권력이 아니라 권력의 화려한 외관만을 추구하게 되고 무책임성은 그로 하여금 정치의 궁극적인 가치와 목적도 없이 단지 권력 자체를 즐기게 만드는 것이다.
4. 맺으며
따라서 정치인은 기본적으로 신념의 윤리와 책임의 윤리를 동시에 조화시키도록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아울러 열정과 소신에 따른 균형적 판단이 수반될 때 존경받는 정치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류의 고전인 「大學」에 의하면 일의 선후(先後)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바로 상황처리의 경중완급(輕重緩急)과 「타이밍」의 선택이 절실함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환자를 살리지 못하는 사후약방문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따라서 금번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정치 협상력은 몇 점이나 받을 수 있겠는가.
나는 3선의 민선시장을 경험하면서 ‘목민관’은 어떠한 자세를 갖는 것이 바람직한가를 고민할 적이 많았다. 또한 지난 4.11 총선으로 국회에 입문한 이래 ‘정치인’으로서의 소명(召命)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자문자답할 적이 많다. 더구나 지금은 과거의 전통적, 정태적 사회가 아니라 역동적이고 복잡 다양한 국제화속에서, 특히 백척간두의 위기상황에서 정치인의 열정과 균형판단은 동전의 양면처럼 지극히 중요한 명제라 아니 할 수 없다. 이러한 점에서 이번에 읽은 막스베버의 정치학 강의 ‘소명으로서의 정치’는 우리들에게 많은 시사점과 감동을 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