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성격은 팔자도 고친다
얼마전, 아주대병원에서 아동 심리 상담과 치료를 하는 교수님으로부터 부적응 아동에 대한 특강을 들었다. 그분의 강의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타고난 팔자라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혹시라도 있다면 어떤 부모 밑에서 태어나느냐 하는 것이란다. 그것은 물론 학벌이나 경제적인 부(富)의 문제가 아니라 그 부모의 ‘심성’이 어떠냐하는 것을 말함이다.
며칠 전의 일이다.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 앞 건물 계단에서 한 엄마가 초등학교 2학년쯤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를 혼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부모가 자녀를 훈계하는 것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지나갔다.
잠시후,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좀 전에 보았던 엄마와 아이가 이곳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엄마는 우산을 들고 있었고 훌쩍거리는 아이는 한 발자국 뒤에서 엄마의 눈치를 살피며 따라오고 있었다. 그렇게 조금 걸어오는가 싶더니 엄마는 느닷없이 아이의 귀를 신경질적으로 잡아당겼고, 아이는 이내 아~하는 비명과 함께 큰 소리로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순식간에 붉어진 아이의 귀, 그 장면을 지켜보는 내 가슴도 숨가쁘게 울렁거렸다.
아무리 부모라 하더라도 어린 아이에게 그런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울면서 정류장 옆을 지나가는 아이의 종아리에는 붉은 자국이 선명했다. 매를 맞은 것이라 짐작됐다.
그 두 모자(母子)가 자리를 벗어나면서 주변은 조용해졌지만. 아이의 뒷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제대로 자신을 변명해 보지도 못하고 일방적으로 무참히 야단을 맞은 아이, 그것도 사람들이 지켜보는 거리에서 매를 맞은 아이. 몸에 난 상처 못지않게 마음의 상처 또한 깊게 남을 것이다.
아직은 어리고 힘이 없으므로 엄마의 폭행을 고스란히 견디겠지만 조금 더 자라 청소년이 되고 어른이 되었을 때에도 언제까지 약자의 입장으로만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옛말이 있다. 자녀교육도 예외가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모자(母子)가 내 눈에서 사라질 때까지 한참을 그렇게 바라보며, 제발 저 아이의 부모가 자식을 대함에 있어 오늘과 같은 상황이 일상적이지 않기를... 또한, 부디 저 아이가 지금 받은 상처를 기억하지 않고 바르고 건강하게 잘 자라주기를 마음으로 기도했다.
아이는 어떤 부모, 어떤 환경에서 태어날까를 궁리하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을 받고 그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아이로 자라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자녀에게 좋은 팔자(?)를 선사해 주는 비결이 될 것이다.
부발 신하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