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의 고향사랑 ‘설봉산 지킴이’

골짜기마다 약수가 흐르는, 이천의 젖줄 ‘설봉산’을 지킨다

2008-07-24     이석미 기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언제나 설봉산에 올라 지역사랑 실천

“나뭇가지를 마구 꺾고, 아무데나 침 뱉고…. 그러지 말라고 주의를 주면 ‘꼬장꼬장한 노인네가 참견이냐’는 식으로 무시하기 일쑤고. 우리고장의 명산인 설봉산을 우리가 아끼지 않으면 누가 아끼겠습니까?”

설봉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설봉산 지킴이’ 이백우(68) 씨가 이천의 젊은이들을 향해 던지는 말이다. 길은 걸으면서 만들고, 그게 또 길이 된다고 했던가. 더 좋은 산길을 많은 사람들과 함께 걸을 수 있기를 바라는 사람들. 바로 ‘설봉산 지킴이’ 어르신들이다.

비가 오나 눈이오나 매일 새벽 5시 30분이 되면 만나 그렇게 더불어서 설봉산 이곳저곳을 걸으며 정화활동을 펼친 지 1년 남짓. 건강문제에 관심이 많은 시대다 보니 매일 새벽등산으로 건강을 지키려는 모임인가? 아니다. 시민운동을 하는 단체도 아니다. 거창한 발대식 같은 것도 없었다. 순수 자원봉사모임으로 당연히 보수 같은 건 한 푼도 없다. 단지 설봉산이 좋아 수 십 년째 산을 오르던 사람들이 모여 자연스레 함께 하게 된 것.

회장이니 총무니 하는 ‘조직’도 없다. 우리고장 설봉산을 함께 지키는데 나이나 직업도 가릴 까닭이 없다. 바쁘게 살아가는 도시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생각들을 다시금 상기시킬 수 있는 여유를 갖는다는 것만으로도 설봉산을 찾는 게 즐거운 사람들일 뿐. 그저 마음이 내켜 함께 하면 누구나 ‘설봉산 지킴이’가 된다.

이들은 이천의 명산인 설봉산을 우리 스스로가 아끼고 가꾸어 아름답게 보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산 곳곳에 마련된 정자나 의자가 있는 곳엔 옆에 쓰레기통이 있는데도 늘 바닥에 버려진 쓰레기가 더 많다. 심지어 깨진 술병이나 음식물 찌꺼기들까지. 이런 것들을 치울 때마다 시민들의 버려진 양심을 대하는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창피하고 속상하다고.

“일주일 중 월요일이 쓰레기가 가장 많이 나와요. 주말 나들이객이 많은 때문이겠죠. 무엇보다 젊은이들이 내 고장을 아끼려는 의식이 많이 부족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이젠 외지관광객들도 많이 찾아오는 만큼 우리 스스로가 자부심을 갖고 설봉산을 지키려는 의식을 가져야합니다. 등산로 원만하고, 골짜기마다 약수가 흐르고, 봄이면 갖가지 꽃들이 만발하고. 이렇게 좋은 명산을 우리 스스로가 지키는 건 이천시민으로서의 당연한 몫이죠.”

고향을 사랑하는 커다란 마음이 뭉쳐 하나 된 ‘설봉산 지킴이’ 어르신들. 매일 새벽, 봉사활동을 마치고 함께 모여 나누는 따뜻한 커피 한잔으로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곤 한다. 매일 산행을 하는지라 모두들 건강만큼은 자신 있지만, 하루라도 안 보이면 ‘혹시나’하는 걱정이 앞서는 나이다. 무뚝뚝한 어르신들, 서로 표현은 안하지만 이 시간을 통해 느껴지는 끈끈한 우정에 내심 뿌듯해하신다.

어떤 회칙도 준수사항도 없는, 설봉산을 오를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설봉산 지킴이’ 장용섭(78), 박지회(73), 지인화(73), 김춘길(73), 한예석(72), 이백우(68), 유점열(63), 박인규(62), 경창수(58), 정용덕(58) 어르신들. 그들은 어릴 적부터 늘 커다란 그늘이 되어준 설봉산이 지나온 세월의 크기만큼이나 더욱 넉넉하고 시원한 그늘로 이천시민의 쉼터가 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