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억 원대 갑부가 인터넷에 공개적으로 데릴사위를 찾는다는 광고를 해 화제가 되고 있다. 주인공은 60대의 자영업자로 그의 딸은 38세의 20억 재산을 가진 미국 유학파이고 현재 국내에서 예술 분야에 종사하고 있다 한다.
아들이 없는 집안에 들어와 자신의 재산을 관리 유지시켜 나갈 수 있는 전문직의 용모 단정하고 성실한 데릴사위를 찾는 것이다. 위탁을 받은 결혼정보회사에 따르면, 광고가 나간 지 이틀 만에 의사, 변호사, 벤처 사업가 등 전문직에 종사하는 200여 명의 남자들이 지원했다고 한다. 심지어는 아들을 둔 부모가 직접 지원 신청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데릴사위제란 우리의 옛 고대사의 풍습에서도 나타나듯이 혼인을 한 후에 남자가 처가로 들어가 사는 제도를 말한다. 이런 풍습은 우리나라에서뿐만 아니라 이웃 나라 일본에서도 행해지고 있다. 일본을 지탱하고 있는 정신 중의 하나인 장인 정신과 남아 선호 사상이 맞물려 아직도 데릴사위가 현저하게 남아 있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예전에 보았던 영화의 줄거리가 떠오른다.
초밥 집을 몇 대에 걸쳐하고 있는 유서 깊은 요리 집이 있었다. 그 가게 이름은 ‘사쿠라바’이다. ‘사쿠라바’는 가문의 성이기도 하다. 근데 이번 대에 들어 아들을 낳지 못하고 딸만 하나 있어 대를 이어가기 어려워 더 이상 ‘사쿠라바’라는 성을 이어받을 사람이 없게 되었다.
일본 여성은 우리와 같이 결혼하면 남편의 성을 따르게 되어 있다. 그래서 사쿠라바는 성을 이을 사람이 없게 된 것이다. 마침 가게에 일하는 직원 중의 한명이 성실하고 생긴 것도 훤칠해서 주인의 마음에 쏙 들어 버렸다. 딸도 싫어하는 눈치도 아니고 해서 어느 날 그 주인은 그 직원에게 “자네 우리 가문에 들어와서 우리 딸이랑 살게나. 그리고 이 초밥 집을 맡아 주게나.”라고 했고 데릴사위가 되면 남자가 여자의 집안에 자신의 호적을 입적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성을 버리고 여자집안의 성을 따르고 그 집안의 대를 잇게 되는 것이다.
우연히 나의 눈에 들어온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온 인터넷 데릴사위 모집광고가 나로 하여금 요즘 우리 사회의 단면을 되짚어보게 한다.
격세지감이란 단어가 떠오를 정도로 참신한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 인터넷 광고에 지원한 250여 명의 남자들은 사랑은 경제적 능력 바탕 위에서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돈이 사랑과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 가정의 행복에 절대적 필요충분조건은 되지 못한다. 아무리 세상이 돈에 울고 돈에 웃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지만, 그래도 우리 인간들이 간과해서는 안 되는 선이 분명히 있다. 돈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돈으로 사람을 사고파는 가치관이 사회에 팽배하게 해서는 안 된다.
우리네 아이들조차도 직업 선택의 기준이 ‘돈’이 되어버렸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신의 장래직업을 “돈 잘 버는 직업이요, 프로 게이머, 프로 골퍼, 프로 선수…” 전문직을 거론하는 아이들에게 왜 그 직업을 택했느냐고 물으면 주저 않고 “돈 때문이에요.”라고 대답한다. 예전처럼, “아픈 사람을 고치려고, 사회 정의를 위해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같은 대답을 기대하는 것은 이제는 무리인 듯싶다.
평생을 같이 가정을 이루어 살아가는 배우자를 선택하는 기준이 점점 조건화 되어가는 세태가 안쓰럽다. 물론 그런 분위기를 조성한 사회적 책임이 더 크다 하겠다.
너나 할 것 없이 경제력, 학벌 같은 좋은 조건을 골라 결혼한 요즘 부부들도 두 쌍 중에 한 쌍이 이혼하고 있는 현실이다. 오늘 아침 1000억 원대의 아버지의 공개적으로 맞춤형 데릴사위를 모집하는 뉴스가 화제가 되고 있는 현실 앞에서, 결혼의 존엄성을 생각해 본다. 선택의 기준이 경제력, 학벌들의 ‘조건’이 판치는 우리네 삶의 현주소를 되짚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