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면의 발전을 위해 구심체 역할을 해온 ‘발전협의회’가 조직 내부적으로 위기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부족해 유명무실한 조직으로 전락했다는 지역민들의 반성이 컸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새로이 확정된 정관에는 발전협의회가 정치적으로 이용됨을 강력히 배제했다. 분열을 막고 화합의 구심체로 지역 장기 발전을 구상해 보자는 취지를 강조한 것이다.
분열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밖에서 보는 대월면의 갈등은 크게 학군과 기득권, 외지인으로 간략히 요약될 수 있다.
이런 발전과 갈등이라는 상반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느냐에 대월면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면에 학교는 대월 초·중학교 뿐
현재 면소재지인 초지리를 중심으로 넓은 대월면에 학교는 대월초등학교와 대월중학교 단 2개뿐이다.
90여 년 전 대월면이 생긴 이후부터 얼마전 까지만 단월, 대포, 고담, 장록리는 대월면에 속했다. 중리동에 편입된 지는 불과 10년 전이다. 이때 단월리는 면소재지로 행정 중심지면서 단월초등학교가 함께 했다. 반면 대월초등학교를 중심으로 한 대월농협 본소가 있는 경제 중심지는 초지리였다. 그러나 대월·단월 초등학교가 대월면에 사는 모든 학생을 소화해 내기란 힘들어 보인다.
일개 면에 생활문화권이 부발읍, 모가면, 가남면 등 4~5개로 나뉘는 것이다.
행정, 경제, 교육 및 생활문화를 중심으로 작은 구심체가 서로 나뉘다보니 서로 간의 경쟁 속에 발전을 꾀한다는 장점 보다 그 역효과로 화합이 좀처럼 쉽지 않았다. 40~60대 지역면민 중에는 이를 아쉬워하는 이가 많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 대월면은 또 다른 형태의 큰 구심체가 생겨나기 시작한다. 1983년 현대전자 이천공장 준공과 1985년 대월 농협 6대 최석규 조합장의 출범이다.
현대전자 이천공장 준공은 기존 대월면의 작은 구심체들 속에 농업이라는 1차 산업에서 2차 산업인 최첨단 반도체산업의 종사자(외지인)들이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전자 외지인 40% 달해
현대전자는 이천 지역 경제의 핵심이다. 공장은 부발읍 아미리에 위치해 있지만 종사자들의 주거 지역은 대월면 사동 4, 7, 8리에 집중되어 있다. 3개 리의 가구수만도 1800여 세대로 전체 대월면 가구 수에 40%에 달한다.
80년대 중반 이후 늘어난 외지인 인구는 초창기 대월면 원주민 간의 충돌은 없었다.
반면 1985년 최석규 대월농협 조합장의 취임은 과거 여러 부류로 나뉘어져 있던 다양한 구심체들을 하나로 모았다는 평가를 받아왔. 하지만 최창선 조합장으로 바뀌기까지 21년이라는 장기 집권은 부정적인 측면도 뒤따랐다.
“최석규 조합장이 대월 농업 발전에 많은 업적을 남겼지. 하지만 그도 여러 사람을 써가며 주위에 교언영색한 말로 많은 사람을 잃었어.”
지역의 한 원로는 과거 권력에 아부하거나 그렇지 못 한 이들 간에 갈등을 회상한다.
이런 두 가지 흐름 속에 새로운 변화가 생겼다. 1996년 제2대 이천시의회에 김학인 의원이 대월면에서 당선됐다. 현 3선 의원인 김 의원은 현대전자 직원이면서 이천이 고향이다. 이는 현대전자의 외지인들이 기존 원주민의 틀 속에 서서히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것을 말한다.
이후 지난 10여 년 동안 깊은 불신의 골은 많이 사그러들었지만 대월의 발전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다.
사동 초·중학교를 만들자
다시 학군의 이야기다. 초중학교가 1개씩 뿐이었던 상황에서 외지인들이 몰려있는 사동리는 교육기관이 절실하다. 2002년 설립된 ‘아미초등학교’를 놓고 대월면 사동리와 부발읍 아미리가 각자 자신의 지역에 유치하고자 했지만, 결국 부발읍 아미리에 설립됐다.
또 현재 사동리에 설립 추진 중인 ‘사동초등학교’도 설립예정지에 가까운 초지리의 ‘대월초등학교’의 학생 이탈을 우려해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그리고 사동 4리에 위치한 현대아파트 5, 6단지 옆에 설립 예정인 ‘사동중학교’도 부발읍 아미리 주민들의 반대에 어려움이 많아 보인다.
현대전자 단지가 들어선 지도 20년이 넘었다. 이젠 외지인이라 말하기도 어렵다. 사동리를 중심으로 아파트가 계속 들어서고 있다. 인구가 계속 유입된다는 것이다. 그냥 스쳐가는 대월면이 아닌 터 잡고 살만한 곳으로 만들어 나갈 때다. 교육환경을 개선하고 학교를 더 만들어야 한다.
자채방아마을을 활성화 하자
앞에서 언급한 하나의 구심체에서 소외되어 가는 부분을 끌어안아야 할 것이다. 즉 농업에 기반을 둔 농촌 마을이 하나의 대안일 수 있다. 이천시에 최초로 생긴 농촌 살리기에 일환으로 조성된 ‘자채방아마을’에 관한 이야기다.
2002년 농업진흥청의 농촌 전통 테마마을로 선정된 군량1리의 ‘자채방아마을’은 볼거리, 쉴거리, 놀러기, 알거리, 먹을거리, 체험거리, 살거리 등 ‘7거리’를 할 수 있도록 조성한 곳이다.
서울 등 수도권 주민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거리에서 북적거리는 도시에서 벗어나 고향과 향토의 정취를 맘껏 누릴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이 마을은 농촌 전통 테마마을 지정과 함께 행정자치부의 정보화 마을로도 선정됐다. 하지만 6년차에 이른 ‘자채방아마을’은 현재 너무 힘들어 보인다.
처음 선정되어 농진청과 행자부에 5억 원을 지원 받는다는 소리에 주민들의 기대치는 무척 컸다. 하지만 막상 시작을 하고보니 시설 투자와 프로그램 구축에도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어렵게 시작했습니다. 점점 뒤쳐져 가는 농촌에 도시인들이 들락날락 하니까 그나마 활력이 넘쳤습니다.”
마을의 운영위원장인 김길재 씨는 초창기의 기대와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어려움이 많다고 말한다.
문제점으로 농가소득에 도움은 되지만 눈이 보이지 않는 행위에 대한 보상은 없으며, 지속적인 체험 시설을 개발하고 순환시켜야 하는데 자금은 언제나 부족하며, 농촌은 무조건 후한 인심이라는 소비자의 인식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또 마을 주민 의식도 1차 산업에서 3차 산업으로 가는 서비스 의식이 부족하다. 이를 지도 교육하기도 힘들다. 경제적인 성과가 바로 보이면 주민들도 적극적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게다가 정부의 정책도 일관성이 없다. 농업진흥청은 ‘전통 테마 마을’, 농림부는 ‘녹색체험 마을’, 행자부는 ‘정보화 마을’, 경기도는 ‘슬로우 푸드 마을’, 농협은 ‘팜 스테이 마을’ 등 우후죽순처럼 찍어내기 바쁘다. 수요는 한정된 것인데 공급은 무한정이다.
“투자가 많이 된 마을이라는 주위의 부러움 뒤에는 앞길이 막막합니다.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 투자되는 만큼 잘 되는 것은 당연하지 않습니까?”
김 위원장은 새롭게 계속 만들어가는 것보다 기존의 것을 얼마나 잘 유지해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전통테마마을은 올해로 전국에 160개 마을 선정을 끝으로 내년부터는 기존 지정 마을 활성화로 전환한다는 방침이다. 자채방아마을에는 양녕대군의 유적지를 보존하는 사업계획이 진행 중이다. 현재 전문 컨설팅 업체에 의뢰되어 있다. 내년이면 사업이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도시민들이 찾는 농촌마을이 되기를 모두가 희망합니다. 단지 정부의 지원만으론 힘듭니다. 우리 마을이 이천을 대표할 수 있는 농촌의 정서를 가져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